4 min read

얼굴 감지 기술은 인종차별적일까? - 비하인드 사족

이미지 프로세싱 쪽에 흥미나 지식도 떨어지면서, 없는 지식을 메꿔가며 이 문제를 좀 더 다뤄볼 마음이 생긴 데에는 몇 개의 계기가 있었다.

재작년 이곳 합창단에서 만난 친구와 공연 직전 사진을 찍으면서.

selfie.jpg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던 순간을 담은 동영상에서, 카메라를 피하지 않던 데릭 쇼빈의 시선을 보고.

작년 6월 해밀턴 뮤지컬 실황 영상을 보고 애런 버를 연기한 레슬리 오돔 주니어에게 치이고.

그리고 작년 9월, 이 글에서 언급된 트위터 난리 통을 보고.

그중 세 번째 계기, 레슬리 오돔 주니어에 대해서 붙이는 사족.


해밀턴 실황 영상의 멋진 점을 말하라면 24시간을 쉬지 않고 떠들 수 있지만 그중 하나만을 꼽으라면 레슬리.

레슬리가 얼마나 멋진 배우인지에 대해서도 역시 한나절을 쉬지 않고 떠들 수 있지만 그중 또 하나만을 꼽으라면 그의 무대 위에서 움직임.

장면의 중심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군무를 추거나 소품을 건네고 이동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얼마나 매끄럽고 우아한지 모든 프레임에서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그 덕에 다양한 조명 - 붉고 푸른 색조명, 스포트라이트, 암전 - 아래에서 그의 얼굴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볼 수 있었다.

실황 공연 영상에서 본 그의 얼굴빛은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나오는 사진 속 얼굴빛과 너무 달랐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어쩌면 내가 미디어매체를 통해 만난 흑인의 얼굴이란

최대한 밝게 세팅되고 메이크업을 하고 후보정을 해서 밝게 만들어낸 게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다.

burr1.jpg


그런데 왜 해밀턴 실황 영상은 달랐을까.

어쨌든 무대에 서기 전에 분장을 했을 거고, 멀티카메라로 촬영한 후 가장 괜찮은 컷을 골라서 편집한 결과를 본 건 마찬가지인데

왜 두 매체에서 얼굴이 이만큼이나 달랐을까. 정말 그게 조명 때문만인가.

글을 쓰고 올리고

개강을 맞아 다시 본 해밀턴 실황 영상에서

프레임 안에서 열심히 이동하고 소품을 옮기고 있지만 암전으로 관객에게는 보이지 않는 배우들을 상상하고서야

그 이유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흑인 배우의 얼굴을 밝게 한다는 이유 따위로 모든 사물을 밝게 보정하기에는, 이 영상에서는 암전이 너무 중요했다.

burr2.jpg


해밀턴은 레슬리의 브로드웨이 데뷔극이었고, 그는 이 역할로 2016년 토니 남우주연상을 탔다.

수상자를 공개하기 직전, 다섯 명의 후보가 한 화면에 잡힌 장면에서

뭐라 말하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tony2016.jpg


레슬리는 2017년 오리엔트 특급 살인 영화에서 닥터 아버스넛 역할을 맡았다.

무시무시한 배우들이 모인 영화, 원작에 없던 흑인 캐릭터를 맡은 게 반가우면서도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된 흑인' 캐릭터가 드러나는 몇몇 대사가 조금 거슬렸다.

나는 그래도 그 영화가 좋다.

orient-express.jpg


스크린이든 무대든 음반이든 목소리연기든 어떤 매체든 상관없으니

그가 더 많이 빛나면 좋겠다.